한 정당이 ‘이 선거는 무효’라고 말했다
2020년 5월 14일. 4·15 총선이 끝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날이었다. 한 정당이 대법원에 소장을 냈다. 요구는 단순하고도 거대했다 — 이 선거, 전부 무효로 해달라.
정당의 이름은 국민혁명당. 비례대표 선거 전체의 무효를 구한, 정당 차원의 유일한 소송이었다. 논리는 이랬다. 비례대표는 전국에 걸쳐 있다. 그 비례에 문제가 있었다면, 전국의 지역구 선거도 무사할 수 없다. 법은 이것을 ‘선거의 불가분성’이라 부른다.
변호인단이 꾸려졌다. 그 안에 유승수라는 변호사가 있었다. 그는 이미 개표 다음 날 아침, 결과가 ‘마치 누가 솎아낸 것처럼’ 어긋나 있는 걸 보고 확신한 사람이었다. 이제 그 확신을 법정으로 가져갈 차례였다.
“정당으로서는 유일하게, 국민혁명당이 21대 총선 비례대표 — 사실상 선거 전체의 무효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겁니다.”
▶ 유승수 변호사 육성 — 공병호TV — 국민혁명당 선거무효소송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법은 180일을 말했다. 180일이 지났다. 법정은 열리지 않았다.
1년이 지났다. 여전히 열리지 않았다. 그사이 국민혁명당은 법원에 돈을 냈다. 인지대로, 송달료로 — 거의 1억 원에 가까운 돈이었다. 재판을 받기 위해 국민이 국가에 치르는 일종의 ‘수수료’였다. 돈은 들어갔는데, 재판은 없었다.
유승수는 그 ‘180일’이 어떻게 무력화되는지 설명한다. 대법원은 이 규정을 ‘반드시 지켜야 하는 강행규정’이 아니라 ‘권고일 뿐인 훈시규정’으로 해석한다는 것이다. 늦어져도 그만이라는 뜻이다. 그렇게 16개월이 흘렀다.
“공직선거법은 180일 안에 선고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대법원은 이걸 ‘훈시규정’이라 해석해요 — 강행규정이 아니니 늦어져도 어쩔 수 없다는 거죠. 그러면 이 규정을 둘 이유가 없어집니다.”
▶ 유승수 변호사 육성 — 공병호TV — ‘선거소송을 묻는다’480일 만의 법정
2021년 9월 6일 오후 2시 40분. 대법원 제1호 법정. 소장을 낸 지 1년 4개월 — 480일 만에, 드디어 첫 재판이 잡혔다. ‘변론준비기일’이라는 이름의, 본 재판을 준비하는 자리였다.
주심은 민유숙 대법관. 변호인단은 서류를 챙겼다. 480일을 기다린 만큼, 할 말이 많았다. 무엇을 어떻게 검증할지, 무엇을 증거로 낼지 — 이제 비로소 그 논의가 시작될 참이었다.
적어도, 그래야 했다.
“2020년 5월 14일에 접수됐고, 2021년 9월 6일 14시 40분 대법원 제1호 법정에서, 이 소송의 첫 번째 재판이라 할 수 있는 1회 변론준비기일이 진행됐습니다. 주심은 민유숙 대법관이었습니다.”
▶ 유승수 변호사 육성 — 공병호TV — 국민혁명당 선거무효소송“재판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
그날 법정에서 나온 말을, 유승수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그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주심 민유숙 대법관은 사실상 ‘재판을 더 이상 진행하지 않겠다’는 취지로 말했다. 480일을 기다려 도착한 첫 법정에서, 변호인단이 들은 것은 변론 일정이 아니라 — 재판을 닫겠다는 통보에 가까웠다.
유승수는 말한다. 이건 한 명의 지방법원 판사도, 그 누구도, 법관이라는 자리에 앉아 있다면 도저히 할 수 없는 말이라고.
“주심 민유숙 대법관이 ‘재판을 더 이상 진행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이건 지방법원 판사 한 명도, 그 누구라도, 법관이라는 지위에 앉아 도저히 할 수 없는 말입니다.”
▶ 유승수 변호사 육성 — 공병호TV — 국민혁명당 선거무효소송흉내가 아니라, 선언이었다
법정을 나오며 유승수는 한 가지를 깨달았다고 했다. 그날의 재판은 ‘재판을 하는 흉내’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앞으로 이 재판은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선언’하기 위해 연 자리였다고 그는 해석했다. 480일을 끌어온 침묵의 마침표를, 침묵이 아니라 한 문장으로 찍은 셈이었다.
재판을 받기 위해 1억을 낸 정당에게, 480일 끝에 돌아온 답이 ‘재판은 없다’였다면 — 그 480일은 대체 무엇이었나.
“재판을 여는 ‘흉내’를 낸 게 아니라, 앞으로 더 이상 재판이 없다는 걸 선언하기 위해 재판을 연 것이다 — 저는 그렇게 평가했습니다.”
▶ 유승수 변호사 육성 — 공병호TV — 국민혁명당 선거무효소송속기록은 거짓말을 못 한다
유승수가 마지막으로 강조한 것은, 검증 가능성이었다. 대법원에서 진행한 모든 재판은 속기록으로 남는다. 그가 전한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그 기록이 언젠가 전부 말해줄 것이라고 했다.
그는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했다. 이런 재판을 거부한 법관은 더 이상 이 사건에 관여해선 안 된다며 ‘기피 신청’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나아가, 국민이 세금처럼 낸 인지대를 받고도 공정한 재판이라는 약속을 저버렸다면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도 했다.
국민은 세금을 낸다. 그래서 국가로부터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다. 이 단순한 문장이, 이 이야기에서는 가장 지키기 어려운 것이었다.
“대법원에서 진행한 재판은 모두 속기록으로 남습니다. 제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그 기록으로 다 드러날 겁니다. 저는 기피 신청을 진행하겠습니다.”
▶ 유승수 변호사 육성 — 공병호TV — 국민혁명당 선거무효소송에필로그 —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
이야기는 여기서 극적으로 끝나지 않는다. 현실의 법정은 웹소설처럼 통쾌하지 않았다.
4·15 총선을 둘러싼 선거무효소송들은 2022년까지 대법원에서 대부분 ‘기각’ 또는 ‘각하’됐다. 일부 사건의 재검표 결과는 선거관리위원회의 발표와 대체로 일치했고, 투표지분류기가 조작됐다는 주장은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국민혁명당의 이 소송 역시, 끝내 인용되지 않았다.
그러니 이 글을 ‘부정선거가 입증된 이야기’로 읽지는 말아 주십시오. 입증된 것은 그것이 아니다. 다만 입증할 필요도 없이 분명한 사실 하나가 남는다 — 법이 ‘180일’이라 적어둔 재판이 480일 만에 열렸고, 그 법정에서 한 정당이 ‘재판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말을 들었다는 것.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속기록에 남아 있다는 것.
법정이 이상한가, 아닌가. 판단은, 이 이야기를 끝까지 읽은 당신의 몫입니다.
※ ‘재판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묘사는 유승수 변호사가 인터뷰에서 전한 평가·해석이며, 민유숙 전 대법관이 이에 대해 별도의 입장을 밝힌 바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본 글은 그의 진술을 사실 기반으로 재구성한 ‘이야기’이며, 법원의 최종 결론(기각·각하)과는 구분됩니다.
⚖️ 법적 쟁점 — 180일은 정말 ‘권고’였나
이 이야기의 핵심은 결국 ‘180일’ 한 줄의 해석에 걸려 있다. 법이 무엇이라 적었는지(조문), 그리고 헌법재판소가 그 ‘180일’을 어떻게 읽었는지(판례) — 둘 다 국가법령정보센터 공식 원문으로 본다.
“선거에 관한 소청이나 소송은 다른 쟁송에 우선하여 신속히 결정 또는 재판하여야 하며, 소송에 있어서는 수소법원은 소가 제기된 날부터 180일 이내에 처리하여야 한다.”
법원은 — 대법원은 이 ‘180일’을 강행규정이 아니라 ‘훈시규정’ — 지키면 좋지만 안 지켜도 판결이 무효가 되지는 않는 권고 — 으로 해석해 왔다. 그 결과 4·15 선거소송은 대표 사건이 첫 판결까지 2년 넘게, 전체 종결까지 약 3년 4개월이 걸렸다.
쟁점 — 조문의 문언은 ‘처리하여야 한다’이다. ‘하여야 한다’는 의무를 뜻하는 말이고, 입법취지도 ‘당선인의 신분을 신속히 확정한다’는 데 있다. 의무를 ‘안 지켜도 그만’으로 읽는 해석이 법문언·입법목적에 부합하느냐 — 이것이 오래 다퉈진 법적 쟁점이며, 비판론은 ‘법이 정한 시한을 사실상 사문화했다’고 본다.
▶ 출처 — 공직선거법 제225조 (국가법령정보센터 원문)“180일의 심판기간은 … 모든 사건에 있어서 공정하고 적정한 (헌법)재판을 하는 데 충분한 기간이라고는 볼 수 없고, 심판기간 경과 시의 제재 등 특별한 법률효과의 부여를 통하여 심판기간의 준수를 강제하는 규정을 두지 아니하므로, … 지침을 제시하는 ‘훈시적 규정’이라 할 것이다.”
법원은 — 이 결정은 ‘헌법재판소법 제38조’(헌재 사건의 180일 심판기간)를 다툰 것이지만, ‘처리기간을 어겨도 제재가 없으면 훈시규정’이라는 그 논리는 공직선거법 제225조(선거소송 180일)에도 그대로 통용된다. 헌재는 이런 180일 규정이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지는 않는다며 합헌(기각)으로 결론지었다.
쟁점 — 바로 여기에 쟁점이 있다. ‘제재 조항이 없으니 훈시규정’이라는 논리를 따르면, 입법자가 아무리 ‘하여야 한다’고 못 박아도 벌칙 한 줄만 빠지면 그 의무는 ‘권고’로 내려앉는다. 그 논리의 끝이 — 180일이 1,093일이 되어도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 바로 이 이야기의 법정이다. ※ 2007헌마732는 헌재법 사건이므로 ‘유추’임을 밝혀 둔다.
▶ 출처 — 헌법재판소 2007헌마732 결정 (국가법령정보센터 원문)180일이 1,093일이 되는 동안, 누구도 ‘위법’을 저지르지는 않았다. 다만 법이 또박또박 적어 둔 ‘신속’이라는 두 글자가, 해석 한 번에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