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자리
대한민국에는 두 개의 무거운 자리가 있습니다. 하나는 대법관. 나라의 마지막 재판을 맡는 열세 명 중 한 사람입니다. 또 하나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 모든 선거가 공정하게 치러지도록 관리하는 자리입니다. 하나는 ‘심판’의 정점이고, 하나는 ‘관리’의 정점입니다.
보통은, 서로 다른 사람이 앉습니다. 그래야 합니다. 선거를 관리한 쪽과 그 선거를 심판하는 쪽이 같은 사람이면, 견제라는 말 자체가 성립하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2017년부터 2020년까지, 그 두 자리에 한 사람이 앉아 있었습니다. 권순일. 그는 현직 대법관이면서, 동시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이었습니다. 법으로 금지된 일은 아니었습니다 — 관행이었습니다. 바로 그 점이, 이 이야기에서 가장 서늘한 대목입니다. 누구도 위법을 저지르지 않았는데, 견제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던 것입니다.
▶ 출처 — 권순일 (위키백과)선거를 관리한다는 것
중앙선거관리위원장으로서, 그는 여러 선거를 관리했습니다. 그리고 그 임기의 끝자락에,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가장 많은 의혹이 제기된 선거가 있었습니다 — 2020년 4월 15일, 제21대 국회의원 총선거.
투표지를 분류하는 기계가 있었고, 사전투표가 있었고, 봉인된 투표함이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그 모든 것이 완벽했다고 했고, 누군가는 그 모든 것이 수상했다고 했습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입니다 — 그 선거를 ‘관리한’ 기관의 정점에, 권순일이라는 이름이 있었다는 사실.
선거가 끝나고,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법원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선거무효소송. ‘이 선거는 잘못됐으니 무효로 해 달라’는 소송이었습니다. 그 소송은 어디로 갔을까요.
그 선거를 심판한다는 것
여기서 한국 선거소송의 독특한 규칙 하나를 알아야 합니다. 선거무효소송은 ‘단심(單審)’입니다. 1심도, 2심도 없습니다. 곧장 대법원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판단합니다.
그러니까 — 선관위가 관리한 선거의 무효 여부를, 다른 어디도 아닌 대법원이 단번에 결정합니다. 그리고 권순일은, 그 선거를 관리한 선관위의 위원장이면서, 동시에 그 대법원의 대법관이었습니다. 관리한 자리와 심판하는 자리가, 한 건물 안에서, 한 사람 안에서 만났습니다.
결과는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4·15 총선을 둘러싼 선거무효소송 126건은, 단 한 건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전부 기각·각하. 법원은 ‘부정의 증거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 결론이 옳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부정선거를 외치던 사람들의 눈에는, 자기가 관리한 시험을 자기가 채점하는 풍경처럼 보였습니다.
박주현 변호사는 그 구조를 깨달은 순간을 이렇게 말합니다 — ‘대법원과 선관위가 한통속이 돼서, 대법관이 선관위원장을 (겸하니) 이래서야 재판을 제대로 받기 어렵겠구나.’
“대법원하고 선관위가 한통속이 돼서, 대법관이 선관위원장을 (겸하니)… 이래서야 재판을 제대로 받기가 어렵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 박주현 변호사 (방송) — 영상에서 보기2020년 7월 16일
선거를 관리하던 그 손이, 또 하나의 운명적인 판결에 닿습니다. 날짜는 2020년 7월 16일.
그날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경기도지사 이재명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습니다. 1·2심에서 당선무효형(벌금 300만 원)을 받아 지사직을 잃을 위기였던 이재명이, 그 판결로 기사회생했습니다. 한 법조 언론은 헤드라인을 이렇게 달았습니다 — ‘이재명 기사회생… 권순일 대법관이 명운 갈라.’
그것은 한 사람의 단독 결정이 아니라 전원합의체, 즉 여러 대법관이 함께 내린 결론이었습니다. 그 점은 분명히 해 두어야 합니다. 다만, 표가 팽팽히 갈린 그 합의체에서 권순일이 어느 쪽에 섰는지를, 많은 이들이 오래 기억하게 됩니다.
선거를 관리한 사람이, 한 정치인의 정치생명을 살리는 판결의 한 축이 됐다. 이 문장에 위법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래도 괜찮은가’라는 질문은, 위법이 없다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 출처 — 로타임즈 ‘이재명 기사회생… 권순일 대법관이 명운 갈라’그가 떠난 뒤
2020년 9월, 권순일은 대법관에서 퇴임했습니다. 퇴임사조차 남기지 않고 조용히 떠났습니다. 그리고 임기 후, 그가 향한 곳이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장동 개발로 천문학적 이익을 거둔, 바로 그 회사였습니다.
그는 화천대유의 고문으로 활동했습니다. 그리고 검찰은, 그가 변호사 등록도 하지 않은 채 화천대유의 법률 직무를 수행했다는 혐의로 그를 기소했습니다. 한편에서는 ‘2020년 이재명 파기환송’과 ‘화천대유 고문’ 사이에 거래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 이른바 ‘재판거래’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사실을 또박또박 적습니다. 그 ‘재판거래’ 의혹은, 끝내 입증되지 않았습니다. 2026년 5월, 검찰은 권순일과 김만배 등에 대한 그 고발 사건을 ‘각하’했습니다. 법적으로, 재판거래는 ‘있었다’고 판단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니 이 장을 오해하지 마십시오. 이것은 ‘권순일이 재판을 팔았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런 결론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것은 ‘선거를 관리하고, 정치인을 살리고, 그 회사의 고문이 된’ 일들이 한 사람의 이력 안에서 차례로 일어났다는 — 그 사실들의 나열일 뿐입니다. 그 나열을 보고 무엇을 느끼는지는, 온전히 읽는 사람의 몫입니다.
▶ 출처 — 권순일 화천대유 고문·기소·각하 (위키백과)두 개의 자리가 묻는 것
다시 처음의 경기장으로 돌아갑니다. 감독이 주심을 겸한 경기. 그 경기에서 한쪽이 졌다면, 진 쪽은 결과에 승복할 수 있을까요. 설령 그 주심이 단 한 번도 편파 판정을 하지 않았더라도 말입니다.
부정선거를 외치는 사람들이 ‘심판이 선수였다’고 말할 때, 그들이 가리키는 것은 어떤 은밀한 음모가 아닙니다. 그들은 그저, 공개된 인사 기록 한 줄을 가리킵니다 — 대법관 겸 중앙선거관리위원장. 그 한 줄이, 그들에게는 모든 의심의 출발점입니다.
반대편의 답도 분명합니다. 겸직은 위법이 아니었고, 파기환송은 합의체의 결정이었으며, 재판거래 의혹은 각하됐고, 선거무효소송은 증거 부족으로 기각됐다. 법은,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결론을 내리지 않습니다. 내릴 수가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질문만은 또렷이 남겨 둡니다. 선거를 관리한 사람과 그 선거를 심판한 사람이, 같은 사람이어도 정말 괜찮습니까. 그 질문 앞에서 당신이 느끼는 불편함의 크기가, 어쩌면 이 나라 사법부에 대한 당신의 신뢰의 크기일 것입니다.
심판은, 선수가 아니어야 합니다. 그것만큼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합니다.
남는 말
이 글의 모든 사실 — 대법관·선관위원장 겸직, 2020년 7월 이재명 무죄취지 파기환송, 9월 퇴임, 화천대유 고문 활동과 기소, 2026년 5월 고발 각하, 4·15 선거무효소송 126건 기각 — 은 언론 보도와 공개 기록에 근거합니다.
이 글은 권순일 개인의 유무죄를 묻지 않습니다. 재판거래 의혹은 각하됐고, 그는 그 점에서 법적 책임을 지지 않았습니다. 이 글이 묻는 것은 오직 하나, ‘구조’입니다 — 견제가 사라진 자리에서, 시민은 무엇을 믿을 수 있는가.
※ ‘재판거래’ 의혹은 검찰이 각하했고(2026.5), 4·15 선거무효소송은 대법원에서 모두 기각됐습니다. 본 글은 공개 사실의 나열이며, 특정인의 범죄를 단정하지 않습니다. ‘심판이 선수였다’는 운동 측의 해석입니다. 판단은 독자에게.
⚖️ 법적 쟁점 — ‘질문에 대한 답’은 처벌받지 않는가
이 이야기에서 가장 오래 다퉈진 판결, 2020년 7월 16일의 그 파기환송을 법조문으로 따져 본다.
“당선되거나 되게 할 목적으로 … 후보자에게 유리하도록 후보자의 행위 등에 관하여 허위의 사실을 공표하거나 공표하게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법원은 —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20년 7월 16일(2019도13328), ‘친형 강제입원 관여 여부’를 묻는 상대 후보의 토론회 질문에 이재명 후보가 부인하는 취지로 한 답변을 두고 — 판시사항 그대로 — ‘공직선거법 제250조 제1항에서 정한 허위사실의 공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다수의견). 표결은 7대 5로 갈렸다.
쟁점 — 대법관 13명 중 5명이 ‘처벌해야 한다’며 반대했다 — 그만큼 첨예하게 갈린 사안이었다. 다수의견은 ‘선거운동의 자유·표현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며 처벌 범위를 좁혔는데, 이를 두고 반대의견과 여러 판례 평석은 ‘토론에서의 허위 답변에 사실상 면죄부를 줬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그 다수의견에, 당시 선거를 관리하던 중앙선거관리위원장(권순일)이 가담한 것으로 평가된다(언론 보도).
▶ 출처 — 공직선거법 제250조 (국가법령정보센터 원문)“다수의견과 같이 후보자 토론회의 토론 과정 중 발언이 ‘적극적·일방적으로 허위사실을 표명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를 허위사실공표죄로 처벌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면죄부를 준다면, 이는 결과적으로 후보자 토론회의 의의와 기능을 소멸시켜 … 선거의 공정을 침해하여 선거제도의 본래적 기능과 대의민주주의의 본질을 심각하게 훼손한다.”
법원은 — 대법관 13명 중 5명이 이렇게 반대했다 — 같은 답변을 두고 ‘처벌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면죄부’라는 말은 바깥의 평론가가 아니라, 반대의견을 낸 대법관들이 판결문에 직접 적은 표현이다. 7대 5 — 무죄로 가른 그 한두 표 차이의 무게가 여기 있다.
쟁점 — 그리고 한 이름. 반대의견을 낸 5명 중 노태악 대법관은, 대법관 신분을 유지한 채 2022년부터 2026년까지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겸했다’ — 2026년 6·3 ‘투표용지 부족 사태’의 바로 그 선관위를 관리한 사람이다. 권순일만의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은 ‘현직 대법관이 맡는’ 오랜 관례다. 그래서 ‘선거를 관리한 손이 그 선거를 심판한다’는 이 글의 제목은, 한 사람의 예외가 아니라 — 제도의 이름이다.
▶ 출처 — 대법원 2020.7.16. 선고 2019도13328 전원합의체 판결 — 반대의견 (국가법령정보센터 원문)겸직도, 파기환송도, 그 자체로 위법은 아니었다. 다만 ‘선거를 관리한 사람이 그 선거·그 정치인의 사건을 심판하는 자리에 함께 있어도 되는가’는, 위법이냐 아니냐와는 다른 차원의 질문으로 남는다.